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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2026년 9월 25일 금요일
잠 24:4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Prov. 24:4 through knowledge its rooms are filled with rare and beautiful treasures.
지식의 소중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학식이 있고, 교양과 소양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집안에 “서재”라는 것을 만들고 많은 책으로 꾸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재는 없어지고, 그 자리를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로 채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희귀하고 값비싼 것으로 채워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지식이나, 교양, 소양등 내면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보다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이나, 물질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 아닐까요? 믿는 사람은 내면적인 것을 가치있게 여겨줄 알아야 합니다. 내면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우는 것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가정을 아름답게 하고, 귀한 것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외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닌, 내면적인 것,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주말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24일 목요일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Is. 43:2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when you pass through the rivers, they will not sweep over you. 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 you will not be burned; the flames will not set you ablaze.
2015년 9월 18일 금요일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한이 나고 손이 흔들려서 컵을 들고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위가 꽉 눌린것처럼 소화를 시킬 수 없었고, 먹는 대로 다 토해냈었습니다. 진통제 애드빌을 먹으면, 열은 내렸지만, 침대가 축축해질 정도로 땀이 났습니다. 그 다음 화요일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구급차를 불러서 응급실로 갔습니다. 검사받은 결과는 간에 야구공만한 크기의 염증(간농양)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위를 눌러서 소화를 방해한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염증이 패혈증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병원에 늦게 왔어도 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긴급하게 항생제를 투여하고, 여러조치를 한 후에, 간에 관을 삽입해서 염증을 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침대에 누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음 깊이 들었던 생각이 “이렇게 죽을수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예수 믿기를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었는데, 그것이, 오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저를 향한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열이 너무 높이 올라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침대가 매트리스까지 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물 가운데서도 불 가운데서도 저를 지키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셨음에 깊이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믿고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23일 수요일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Eph. 2:2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이 믿지 않을 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1절에 이들은 “죽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육신은 숨을 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음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그들의 모습은 이 세상 풍조를 따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의 모습, 그들의 생각, 행위, 말, 풍습, 목적등에서 세상적이고, 세속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상 풍조를 거스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을 돌아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의 삶 속에서 세상풍조를 따르는 사람들과 다른점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는 삶은 아닙니까?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속적인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그것은 사탄을 따르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세상과 다른 거룩한 모습을 만들어 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22일 화요일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Is. 40:31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누구나 피곤하고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코비드로 몸살을 앓던 것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는데, 이제는 계속되는 전쟁과 재난으로 세계 모든 사람에게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우리는 우리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상황이라도 힘을 얻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역동적으로 사는 길이 있다고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독수리의 날개같은 힘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걸어가도 달려가도 피곤치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을 생각하며, 매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안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도 동행하면서 새힘을 얻으시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21일 월요일
시 63: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Ps. 63:3 Because your love is better than life, my lips will glorify you.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해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생명을 귀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끔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추구하는 것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유를 위해서, 혹은 신념을 위해서, 혹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들을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생명”의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저자는 생명보다 더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주님의 인자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은 가장 귀하다고 하는 생명의 가치보다도 귀하고, 좋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이 좋고 귀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더 좋다고 고백하며 사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우리 좋으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매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8일 금요일
잠 23: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Prov. 23:21 for drunkards and gluttons become poor, and drowsiness clothes them in rags.
술취하는 것, 음식을 탐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술을 즐기는 것과 음식을 탐한다는 것은 쾌락을 추구하거나, 방탕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한국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경향이 짙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디서나 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먹을것이 풍요로운 시대에 좀 더 좋은 것을 탐하는 모습들은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찾기 보다는 괘락과 즐거움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쾌락의 모습들은 또한 깨어있지 못하고 나태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인 의미에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인 즐거움과 쾌락을 따라가게 되면, 영적으로 잠이 들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고 행하고 사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안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것을 다 누리는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주말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7일 목요일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Is. 26:3 You will keep in perfect peace him whose mind is steadfast, because he trusts in you.
대학다닐 때 클럽활동을 했는데, 병원전도를 매주 나가는 활동이었습니다. 이름은 “촛불선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던 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촛불에는 심지가 있으니, 단단히 지키면 평강의 평강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한 심지가 촛불의 심지가 아닌 것을 알았음에도 우리는 이 말씀을 좋아했습니다. 심지라는 말은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지극한 평안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그 믿음과 마음을 우리가 지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게 지키지도 못하고 평안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매순간 경험하고 사는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6일 수요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Gal.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씨를 처음 본 것이 1984년 주찬양선교단이라는 찬양사역자들의 콘서트에서였습니다. 송명희씨는 아름다운 시를 많이 썼지만, 말하는 것도 심지어는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의 몸은 말 할때마다 비틀렸고,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말하는데도 알아 듣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 앞에 나와서 꽤 긴 시간에 걸쳐서 갈 2:20을 암송했습니다. 저는 그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내 몸은 비록 이렇게 보이고, 여러 가지로 힘들어도 주 은혜로 믿음 가운데 살아갑니다라고 그 누구보다 큰 소리로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자기 안에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를 보았습니다. 바울처럼 송명희씨처럼 예수님 때문에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5일 화요일
사 17:10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
Is. 17:10 You have forgotten God your Savior; you have not remembered the Rock, your fortress. Therefore, though you set out the finest plants and plant imported vines,
이스라엘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가지로 말씀하는데,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지탱하시고 그들에게 힘을 주신 능력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지켜주심에 대한 감사도 없고, 그 하나님을 완전히 잊고 산 것이 멸망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기뻐하는 나무를 심고 이방의 나뭇가지를 “씨뿌렸다”는 의미입니다. 이방신을 섬기는데 나무를 우상으로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아닌, 자신의 기쁨을 따라서 행동한 것입니다. 익숙한 것이 아닌 이방의 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방이라는 말은 “나그네적인 것, 혹은 이상한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의 구원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기의 기쁨과 자기 눈에 보기 좋은 것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원인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구원과 매일 주시는 은혜에 감사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에 따라 살아가는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4일 월요일
시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Ps. 57:5 Be exalted, O God, above the heavens; let your glory be over all the earth.
시편 저자는 소리 높여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들려지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기쁘고 좋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다윗이 사울에게 쫒기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굴에 숨어 있을 때에 하나님께 올린 찬송입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그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이 어떻게 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하나님을 높이고, 이 모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다윗처럼 주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중심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님과 함께 하는 행복한 매일 매일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1일 금요일
잠 23: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Prov. 23:10 Do not move an ancient boundary stone or encroach on the fields of the fatherless,
지계석이라는 것은 자기 소유의 땅을 표시하는 표지입니다.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옛적에는 돌을 많이 썼기 때문에, 지계석이라고 표현한것입니다. 지게석을 옮긴다는 것은 자기 소유의 땅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로 땅을 더 소유하려면 지계석을 옮기는 일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더 많은 땅을 소유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지계석을 옮겨서 남의 땅을 침범하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의 정하신 축복을 가로채고 빼앗으려는 행위입니다. 또한 농경사회에서, 땅을 빼앗는 행위는 그 사람과 집안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지계석을 옮기는 것을 죄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지키지 않는 불순종과 언약파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짓밟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탈취하더라도 자신만 배부르면 된다는 더러운 욕심에서 나온 반 사회적인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돌보아주어야 할 고아들의 먹을것과 생계까지도 빼앗는, 비인간적인 일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짓밟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쁨과 유익이 되어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주말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0일 목요일
사 7: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Is. 7:12 But Ahaz said, "I will not ask; I will not put the LORD to the test."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해서 남쪽 유다를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들이 남쪽을 해롭게 하지 못할것이라는 말씀을 아하스왕에게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왕이 그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유다백성이 안전해 질 것에 대해서 징조를 구하라고 아하스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하스왕이 오늘 말씀으로 대답했습니다. 어찌 보면, 징조를 보여주지 않아도 믿겠다는 믿음의 말같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겸손하고 경건한 말 같지만, 사실은 겸손과 의를 가장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의 완고함과 불신앙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말 은 의로운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말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자신에게 다 계획이 있고, 이 계획대로 하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맡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을 의지하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행하심을 거부한것입니다. 하나님을 그의 삶에서 밀어내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도 혹시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뜻을 따르는 사람은 아닙니까? 하나님보다 나와 내 능력을 더 의지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항상 하나님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뜻을 순종하고 사는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선적이 아닌, 진정한 경건과 믿음과 겸손을 가지고 사는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9일 수요일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9:6 Remember this: Whoever sows sparingly will also reap sparingly, and whoever sows generously will also reap generously.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은 마치 씨를 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씨를 많이 뿌리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씨를 적게 뿌리면 적게 거두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많이 거두기 위한 목적으로 헌금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바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씨앗 하나에 하나가 열리는 것이 아니고,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심어서 물질을 거두는 것도 좋지만, 물질을 심어서 더 풍성한 영적인 열매도 함께 거둔다면 그것도 더 큰 축복일 것입니다. 억지로나,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누리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8일 화요일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Isaiah 1:18 "Come now,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이사야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그에 따른 징계와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이들이 죄가 있고, 또한 징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들을 고치시고, 깨끗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새빨갛게 물들여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눈처럼, 양철처럼 희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의해서 이렇게 깨끗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깨끗함을 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의 마음을 죄로 물들이고 혼탁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깨끗게 하시는 은혜를 맛 본 사람들이 된것입니다. 우리 겉 모양은 그대로인지 모르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깨끗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받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늘 감사하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7일 월요일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Ps. 50:15 and call upon me in the day of trouble; I will deliver you, and you will honor me."
인생에 어려움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려움"과 "곤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환난은 어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어려움의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기도하면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구원하심을 경험하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적과 결과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을 높이고, 나타내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 기도하는 매일, 하나님을 경험하는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평안과 안정을 누리는 매일이 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4일 금요일
잠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Prov. 22:15 Folly is bound up in the heart of a child, but the rod of discipline will drive it far from him.
오늘 말씀은 현대인에게는 논란이 될수 있는 말입니다. 첫 번째,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둘째는, 징계하는 “매질”이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성경은 아이나 어른이나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의롭게 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의로 교육받은 어른보다는 아직 교육을 다 받지 못하고 본성에 따르는 아이가 더 어리석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매”라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어리석은 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대로 허리띠를 채찍으로 삼아서 아이들을 징계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폭력적이고, 학대하는 교사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학대때문에 정당한 징계조차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통제되지 않고, 탈선하는 아이들이 더 많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얼마전 “참교육”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공감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말씀하는 것은 자녀들은 분명 “징계와 훈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말씀이지만,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우리도 징계가 필요한 미련한 것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늘 주의 도를 따르며 지혜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주말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3일 목요일
전 2: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Ecc. 2:18 I hated all the things I had toiled for under the sun, because I must leave them to the one who comes after me.
전도서 기자는 왜 자신의 수고를 미워하고, 헛되게 생각하는지를 말합니다.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다른 사람이 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수고한 것이 스스로에게 유익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때문에 자신이 일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죽게 되면 수고한 것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두 번째는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자기의 수고의 결과를 다른 사람이 누린다는 사실이 괴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전도서 저자가 한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헛되고, 심지어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미워한다고까지 하였으니 하나님안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얻는 것들이 죽음으로 인해서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목표나 목적을 두고 살지 않으면 됩니다. 죽음 후에 오는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고, 우리의 모든 수고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맞추고 산다면 헛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기적으로 산다면 그것도 헛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수고한다면 모든 것은 오히려 의미있게 될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의미있고, 멋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2일 수요일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2 Cor. 5:9 So we make it our goal to please him, whether we are at home in the body or away from it.
바울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면 새로운 삶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주와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이 더 좋기 때문에, 8절에서 그가 원하는 것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거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하는 것을 갈망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살거나, 혹은 몸을 떠나게 되거나, 어떤 상황속에서라도,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자신과 믿는 사람들의 목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혹은 죽음이 온다고 하더라도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언제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9월 1일 화요일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Job 42:5 My ears had heard of you but now my eyes have seen you.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던 욥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고난은 보통 사람이면 견디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주변의 사람들도 그를 비난하고,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큰 부자였고, 잘 살던 욥은 재물도, 건강도, 사람도 다 떠나버리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고난의 끝에, 그는 오늘 말씀을 고백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백번 들은 것 보다, 한번 보고 경험한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잘 몰랐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말씁입니다. 욥에게 있어서 고난이 유익이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고,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게 되는 것은 축복중에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른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감격적으로 하나님을 이제야 보고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욥처럼 고난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31일 월요일
시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Ps. 43:5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시편 저자는 자기 자신에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그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또한 불안해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면, 그 일 자체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어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속의 낙망과 좌절과 불안입니다. 이런 것이 마음에 있을 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게 만드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되면, 낙망과 좌절과 불안이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평안으로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예수님안에서 행복한 매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28일 금요일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Prov. 22:4 Humility and the fear of the LORD bring wealth and honor and life.
두 가지의 신앙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겸손과 여호와 경외입니다. 겸손은 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중에 하나입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고, 빌립보서 2장에서는 예수님의 성품중에서 겸손을 닮으라고 말씀합니다. 겸손과 여호와 경외가 따로 나오기는 하지만, 겸손한사람의 결과는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마음의 자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삶의 자세를 다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에 나오는 모든 마음과 성품과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경건한 마음과 태도와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겸손과 여호와경외를 뗄수 없는 관계라고 말씀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면, 재물(풍요로움)과 영광과 생명이 온다고 말하는데,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은 겸손의 삶을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오늘 말씀에서 약속하신 풍요와 영광과 명예, 그리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사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주말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27일 목요일
욥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Job 22:21 "Submit to God and be at peace with him; in this way prosperity will come to you.
엘리바스라는 친구가 욥에게 한 말입니다. 그가 한 말은 믿음의 말이고, 옳게 보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면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좋은 말이 욥에게는 “상처”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이 말로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욥을 “정죄”하기 위해서입니다. 욥이 고통을 당하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이유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평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말인데, 고통 중에 있는 욥에게, 좋지 않은 목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그가 이 말을 한 의도가 욥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고, 정죄하는 마음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도, 때와 상황에 맞게, 또한 좋은 마음으로 해야 진정 가치 있고, 위로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늘 은혜로운 말로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26일 수요일
고전 16:13-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 Cor. 16:13-14 Be on your guard; stand firm in the faith; be men of courage; be strong. Do everything in love.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쓰는 편지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믿음위에 서야 합니다. 용기를 내고 힘을 내고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으로 모든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기도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믿음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믿음 가운데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맞설 수 있도록 용기를 내어서 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 갈 때도, 힘을 내어 열심히 살 때도,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해야 할 일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랑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그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25일 화요일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Job 19:25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that in the end he will stand upon the earth.
아마도 이 구절과 이 다음 구절은 욥기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이고, 또한 가장 유명한 구절이기도 할 것입니다. 욥이 그의 환난 가운데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은 "구속자"이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믿음입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그의 고난은 구원해 주시는 분이 없어졌거나, 혹은 능력이 없으신 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견디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날과 그의 나라를 사모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욥을 기억하고,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욥과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그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시 38:11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Ps. 38:11 My friends and companions avoid me because of my wounds; my neighbors stay far away
시편 38편은 어려움을 당한 저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하는 기도 시입니다. 오늘 구절은 그의 절박한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상처를 입었을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또한 친척들도 멀리 섰다고 말씀합니다. 친척이라는 의미는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가까워야 할 사람이 멀리 서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 사랑하는 사람, 친척들, 즉 가장 가까워야 할 세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자기를 떠나고 아무도 자신을 위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망의 때에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우리를 떠나고, 우리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편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매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21일 금요일
잠 21:25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Prov. 21:25 The sluggard's craving will be the death of him, because his hands refuse to work.
게으른 사람이라도 욕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게으른 사람의 욕망을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서 일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것을 바라고 소유하려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서 악한 사람의 유형으로 종종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교만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입니다. 게으르면 오늘 본문에 나온 대로 자신을 죽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게으른 사람이 악할 수 있습니까? 게으름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실한 종을 칭찬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는 반면, 책망하시는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26)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게으름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에게 합당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항상 부지런하여 주님을 섬기며 충성된 종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사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주말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20일 목요일
에 3: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Esther 3:2 All the royal officials at the king's gate knelt down and paid honor to Haman, for the king had commanded this concerning him. But Mordecai would not kneel down or pay him honor.
모르드개가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은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는 하만이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신 “아말렉”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은 것은 문지기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것이 자신에게 큰 불이익이 올것이라는 것을 알았을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왕의 명령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법도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9일 수요일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1 Cor. 10:24 Nobody should seek his own good, but the good of others.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죄된 성품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결과를 낳을수도 있습니다. 특히, 교회안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결국에는 교회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바울은 이런 이기심 대신에 다른 사람의 유익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위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며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살기를 힘쓰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8일 화요일
느 13: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을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Neh. 13:24 Half of their children spoke the language of Ashdod or the language of one of the other peoples, and did not know how to speak the language of Judah.
느헤미야가 분노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과 결혼한 것과 그들의 자녀들이 유다방언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족이 아닌사람들과 결혼하는 것과 그들의 자녀들이 유다방언을 못하는 것은 미국에 사는 우리들도 겪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들을 책망한 것은 단지 이방인들과의 결혼이나, 언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과 결혼한다는 것은 대부분 믿음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이 유다방언을 못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글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이방인중에서도 유대인으로 개종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가 구스여인과 결혼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신앙에서 떠난 결혼은 결국 신앙에서 떠난 자녀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이라는 정치적인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그의 최대의 관심은 “믿음”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처럼 믿음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7일 월요일
시 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Ps. 34:4 I sought the LORD, and he answered me; he delivered me from all my fears.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셔서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건지셨다는 말씀인데, 그를 두렵게 하는 모든 요소가 없어졌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두려움의 근원이 사라졌다고 보기보다는, 자신을 두렵게 하는 원인들이 있기는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어려움도 힘든 일도 닥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닥칠 때,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상황보다도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혀서, 낙심하게 될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견딜수도 이길수도 없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상황은 그대로일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염려하지 않게 되었다는 신앙의 고백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윗처럼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담대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매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4일 금요일
잠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Prov. 21:9 Better to live on a corner of the roof than share a house with a quarrelsome wife.
읽을때마다 웃음짓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사람은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이며,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것은 세상에서도 이야기하지만, 성경에서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부여하신 축복입니다. 그리고, 또한 평안히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소유하고 사는 것도 복입니다. 그런데, 자기 소유의 집에서 풍요를 누리면서도 만약에 다툼과 싸움이 있다면, 넉넉지 않더라도, 혼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평안한 것이 다툼이 있는 풍요보다 더 좋은 것이고, 평안한 것이 겉모양만 번지르르 한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다투는 아내를 내 보내라는 것이 아니고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자만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툼이 없는 가정, 평안한 가정이 물질적 풍요보다 더 복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풍성하게 누리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주말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3일 목요일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 Corinthians 9:25 And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exercises self-control in all things. They then [do it] to receive a perishable wreath, but we an imperishable.
바울은 우리의 신앙의 삶을 운동 경기하는 사람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운동경기에 나가는 모든 사람은 절제하며, 몸을 만들고 훈련합니다. 세상에서, 운동 경기하는 사람조차도 이기기 위하여 절제하며 자신을 훈련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경기를 하는 우리는 더 절제하고 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순간적이고 썩어질 상을 위하여도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절제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욕망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를 잘하기 위해서 세상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절제하고 더 훈련하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2일 수요일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1 Cor. 8:13 Therefore, if what I eat causes my brother to fall into sin, I will never eat meat again, so that I will not cause him to fall.
바울이 살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구입해서 먹는 대부분의 고기는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우상제물 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우상제물을 먹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우상제물을 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우상이라는 것이 헛되고 아무런 힘이 없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상제물을 먹는 것은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비록 바울에게는 고기를 먹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만약에 자신이 고기를 먹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들 수 있다면,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즉,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라도 포기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나, 권리라도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1일 화요일
느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Nehemiah 2:4 The king said to me, "What is it you want?" Then I prayed to the God of heaven,
느혜미야는 페르시아의 고위 관직에 있으면서도 자기 조상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직까지도 황폐한 상황인 것을 듣고 안타까워하며,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왕이 알아채고서, 느헤미야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고, 또한 그 마음에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 그가 그 짧은 순간을 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즉, 언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10일 월요일
시 30:5 그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Ps. 30:5 For his anger lasts only a moment, but his favor lasts a lifetime; weeping may remain for a night, but rejoicing comes in the morning.
시편 저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어려움을 당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앞에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비록 노하심으로 징벌을 내리셨지만, 그 징벌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를 잠깐 품으시지만, 사랑하심과 은총은 평생을 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지금 비록 어둡고 힘든 시간, 눈물의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저녁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거두시고 기쁨을 주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의심치 않고 믿고 아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고통을 면하게 해주시고, 회복시키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은총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매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2026년 8월 3일 월요일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Ps. 23:1 A psalm of David.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구절중에 하나일것입니다. 목자라는 단어는 다윗뿐만 아니라, 목축을 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도 친숙한 단어였을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신다는 표현은 목동이었던 다윗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양보다도 양을 더 잘 아는 목자, 양의 필요를 양보다 더 잘 알아서 채워주는 목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호하며, 안전한 길로 이끄는 목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자의 모든 좋은 면을 다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목자이신 하나님안에서 부족함이 없고, 즉 만족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늘 부족하게 느끼고 무엇인가로 채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입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만족하지 못한 삶도 세상의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없어서입니다. 하나님만이 만족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목자되신 하나님안에서 만족을 누리며, 감사하고 사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주간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매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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